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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D-day H- hour, 새벽 6시 아시아 자동차에는 건장한 청년 2명이 카빈 총을 거꾸로 메고 여러 명의 남자들과 나타나 아시아 자동차에 들어 와 군용차량을 내 놓으라고 요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이미 무장을 한 북한 병력이 출현을 했던 것이다. 

                       18-3.jpg


누가 문을 열어 주었는지 어디로 들어 왔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이들은 서울에서 광주로 지원 나온 대학생들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있었고, 이들 주변에는 어느 새 회사의 노조원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이미 회사는 지속된 광주시내 시위로 인해 초비상 상태가 되어서 출하를 앞둔 대기차량 전체에 타이어 공기를 빼놓고 냉각수와 오일은 물론 밧테리까지 제거한 상태로 주차해 놓았는데, 이런 차량 상태를 본 괴한들은 총을 들이 대면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목숨 걸고 지원 나왔는데 당신들 광주사람들 맞아? 하면서 협박을 시작했고, 노조원들이 회사 당직자들과 이야기를 해서 5톤 레카차와 2/5톤 카고 트럭을 내주라고 했고, 회사는 불상사를 염려해 그 정도 선에서 일 처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지게차를 불러 차를 떠서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주변에 있던 노조원들이 오일과 냉각수를 채우고 밧테리를 연결하자 마자 이들 괴한들은 능숙하게 차를 몰고 회사 밖으로 사라져 버려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다. 

한편, 광주공원에 흩어져 비밀리에 주둔을 하고 있던 1전대 300명은 지휘관의 명령이 내리자 일제히 비표시를 하고 시내로 흩어져 비표시를 하고 시내 요소 요소에 대기하고 있던 안내원과 호송원들에게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는 말과 여자들은 보이기만 하면 다 죽이고 강간을 한다고 말을 전해 주고 다니기 시작했다. 

유동 삼거리 인근에 흩어져 대기를 하고 있던 2전대 300명은 아직 비표시 착용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대신 대학생용 가방 250개에 공사장에서 넣어 온 돌맹이를 확인하고 전남 대학교 정문에 집결하라는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조별로 삼삼오오 흩어져 걸어서 전남대 정문으로 향했다. 


                       18-4.jpg


이런 사실을 서울 계엄본부와 합동수사본부와 전남대에 주둔 중인 공수부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전투교육사령부와 31사단 장성들은 북한군의 다음 작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9시 30분 전남대 정문에는 공수부대원 7,8명이 한가하게 정문에서 단독무장을 한 상태에서 진압용 곤봉을 들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18-5.jpg


이날은 일요일인데다가 어제 밤 12시를 기해 전국계엄이 실시된 상태라 학교에 있던 학생들 중 수배된 학생들은 체포해 경찰에 인계를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귀가 조치를 시켜 놓았기 때문에 별로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고 한가하고 안일한 자세로 정문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대략 20여명의 학생들이 나타나, 공수부대원들에게 학교에 들어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경비병들은 안 된다고 가라고 하자, 왜 안되냐는 시비조의 언사를 하는 학생이 있어서 그 학생을 나무라고 가라고 손짓을 하니까 이 학생들이 소리를 치면서 왜 안되냐고 대들기 시작하니까 지휘관은 경비병들에게 이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했고, 경비병들이 학생들에게 다가 가자 학생들은 일제히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을 하면서 군인들이 학생을 때린다고 소리쳤다. 

이런 학생들의 큰 소리를 들은 군인들은 화가 나서 일제히 학생들에게 달려 들기 시작을 했는데, 갑자기 수를 알 수가 없는 한 떼거리의 청장년들이 나타나 책가방을 길바닥에 내려 놓더니 가방을 열고 돌맹이를 던지기 시작을 했는데, 무방비 상태로 학생들을 쫒던 경비병들은 수백명의 청장년들이 일시에 집중적으로 던지는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뒹굴기 시작을 했고, 이 모습은 본 지휘관은 놀라서 호각을 불어 비상을 알리자 수백명의 청장년들은 일제히 가방을 들고 시내로 달려서 도주를 시작해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은 훗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실상은 이 사람들은 유동 삼거리에 주둔을 하고 있었던 2전대 300명의 북한 특수전 요원들이었는데, 전남대학교 앞에서 돌맹이를 던졌다고 해서 그냥 전남대생이라고 수사기관에서 검증도 없이 결정을 해 버린 것뿐이었다. 

                      18-6.jpg


이렇게 해서 작계 80518의 D-day H-hour 는 성공적으로 작전이 끝났고, 다음 단계는 전교사와 31사단 장성들의 공수부대 배치와 강경진압을 지시하고 계획된 곳으로 투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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