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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새벽 4시,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정웅 31사단장은 즉각 11공수여단 3개 대대 병력에 대하여 광주 시내로 출동 하라고 지시 하였고, 이에 11공수여단 61대대 1지역대는 전남도청, 충장로, 금남로에, 2지역대는 동부경찰서 관할 지역에, 3지역대는 서부경찰서 관할 지역으로 출동하여 3-4명씩 팀을 구성하여 경계 임무에 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북한군 이을설 장군이 노리고 있었던 유격전술의 기본적 전술로 다수의 군중으로 소수의 적을 친다는 작전 개념으로, 남조선 소수병력들이 배치된 작전지도를 보면서 이을설은 각 지휘관들에게 작전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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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전 11시, 4천여 명의 학생들을 앞장 세운 1전대는 금남로에 모여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을 죽이려고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저지 경찰관에게 화염병을 투척하고 각목과 쇠파이프로 경찰관을 폭행하면서 신속하게 차량 10여대를 빼앗아 불을 질러 연기와 불길을 높이며 광주 시민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정웅 사단장의 강력한 지시로 금남로 시위 현장으로 출동한 7공수여단 35대대 병력 280명은 공사장 자제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휘발유 드럼통에 불을 붙여 계엄군 대열로 굴리는 수천 명의 시위대의 격렬한 공격을 받자 진압은커녕 최루탄만 쏘면서 방어에만 급급해 하고 있었다.

북한군 이을설 장군은 방금 나주 경찰서를 접수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아직 무기고는 접수하지 못했는데, 김대중쪽 부대가 작전계획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 중에 광주 교도소를 해방 시켜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에 입이 바짝 말라 신속하게 작전을 이행하라고 지시를 했다.

광주 시내에서는 충장로 파출소가 공격을 받는다는 신고로 출동한 11공수여단 61대대 1지역대가 엄청난 숫자의 시위대에게 포위가 되자 경비를 포기하고 안전한 인근 건물로 피신 한 후 여단 본부에 구조를 요청하는 신세가 되였다.

이런 구조 요청에 62대대와 63대대가 증원 출동하자 시위대는 물러났고. 61, 62, 63대대는 충장로에 집결해 경계에 임하다가 시위군중들이 해산하자, 14시경 주둔지인 조선대로 복귀해 병력들에게 식사 식사를 시키는 한편 부상자는 통합병원으로 후송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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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공수대원이 이화여대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명의 팬티와 브라자까지 모두 찢어내고 구두 발로 엉덩이를 찬 후 대검으로 등을 찔러 죽였다”  “공수대원이 광주 수창초등학교 앞 전봇대에 산사람을 거꾸로 매달았다” “시내에서 40명의 대학생이 죽어 금남로가 피바다가 됐다” “공수대원들이 젊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고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개 몇 마리 잡았느냐고 농담을 한다”라는 등의 악성 유언비어가 유포가 되면서, 3시경에는 수십 명의 청년들이 소형 트럭에 시신을 싣고 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계엄군이 무고한 학생을 죽였다” 라면서 학생과 시민이 더 이상 희생되기 전에 계엄군과 싸우자고 외쳐댔는데 이에 흥분하여 부녀자까지 포함된 시민들이 일시에 학생 시위에 가담하자 시위 군중은 갑자기 1만여 명으로 늘어 나면서, 공사장 자제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휘발유통에 방화를 하여 저지 경찰을 공격하고 CBS 사옥에 몰려가 기물을 파괴 하였는데. 이번 작전은 나주에서 무기고가 북한군과 김대중 부대에게 접수가 되면서 동시에 시작된 것이었다. 

이제 교도소가 해방되고 무장한 교도소 봉기 부대가 광주 시내로 진입을 해 군중들이 포위한 공수대 병력을 모조리 사살하고 즉각 대전으로 진격을 해야 하기에 시내에서 작전 중이 북한군 600명과 안내원과 호송원 1천명 그리고 전교사와 31사단에서 암약하던 한국군 장성 모두가 초긴장 상태가 되어, 가열차게 시위 작전을 하라고 각자 독려를 하고 있었다. 

이에, 카토릭센터 앞에 모인 시위군중 3천여 명을 앞세운 1전대는 승용차 8대를 탈취하여 방화를 하고 MBC 사옥에 난입한 후 MBC 방송국 경비병을 습격하며 M-16소총 1정과 실탄 15발을 탈취하였고, 2전대는 역전 파출소, 도문동 파출소, 양동 파출소, 일동 파출소를 기습해 파괴하고, 방화를 해 버렸고, 이런 과격한 시위를 본 흥분한 군중들은 더 악을 쓰면서 모여 들었다.

그러나, 나주에서 올라 온 보고를 받은 이을설 장군은 안색이 변해 급히 평양으로 무전보고를 했고, 저녁 무렵이 되자 부관을 불러 작전 중단을 지시했는데, 그 이유가 나주에서 교도소를 공격할 부대가 도로가 봉쇄되자 진로를 멋대로 변경을 했기에 작전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는데, 부관은 잠시 후에 이을설 장군에게 시내에 군중들이 너무 많이 불어나 작전을 중단할 수가 없다고 보고를 했다.

광주시내 상황은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 330명이 5,000여명의 시위대에 포위 공격을 받고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도청으로 후퇴했고, 17시 30분경에는 카톨릭센타 앞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 군중이 계엄군의 장갑차를 포위하고 투석과 폭행을 하여 장갑차에 타고 있던 병사가 겁에 질려 도망을 가고 이 과정에서 계엄군 1명이 중상을 입고 장갑차와 계엄군이 소지하고 있던 M-16 소총이 피탈 되었는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조용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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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은 북한군의 무장봉기 작전도 실패를 했고, 진압을 하던 공수부대의 진압작전도 실패를 하면서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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