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항일군대. 해체일시 1946년 6월

by 종이비행기 posted Apr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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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동중인 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들과 가족들이 중국 낙양(洛陽)에서

China,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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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항일군대. 해체일시 1946년 6월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광복군의 조직을 찬성했지만, 한편으로 임시정부와 분열 상태에 있는 김원봉(金元鳳)계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와 이미 합동하여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에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의 성립전례를 가지고 우선적으로 광복군을 발족시켰다.


발족일을 전후하여 광복군 조직의 포고문, 선전 전단 등이 배포되었고,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는 관계법규를 정비하였다. 총사령에 지청천(池靑天), 참모장에 이범석(李範奭)이 취임했다.


광복군은 3개의 지대(支隊)로 편성되었다. 제1지대장에 이준식(李俊植), 제2지대장 공진원(公震遠),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가 취임했다. 또 1941년 1월에는 제5지대가 편성되어 나월환(羅月煥)이 통솔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941년 12월 9일 대일선전(對日宣戰)을 정식으로 포고했다. 이를 계기로 분열상태에 있던 공산진영과 협업하는 작업이 추진되어 1942년 7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었고,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했다.


중국 군사위원회에 예속되어 있던 광복군은 1944년 8월에 임시정부로 이관되어 임시정부 통수부(統帥府)가 통할하기 시작했다. 광복 직전에는 한미합동작전으로 국내 정진대(挺進隊)를 편성하여 진격하려다가 출동 시기가 임박해 일제가 항복하면서 실현하지 못했으며, 해방 후 일부는 귀국했다.


귀국한 광복군의 일부는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과정에서도 주역이 되지 못하고 만주사관학교나 일본사관학교 출신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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