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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에서 열린 만민공공회에서 열열한 지지자가 된 월남 이상재선생이 이승만의 열변을 듣고 있는 모습. 

배재학당에 서 이승만에게 처음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배운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 

선교사 가족과 선교사들이 배재학당 고목나무 에서 남긴 기념사진  



물론 만민공동회는 열릴때마다 경리(警吏)들에 의하여 폭도 혹은 반란이라는 죄명으로 해산하곤 하였다  그러나 왕은 러시아와 일본의 음모나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압력에 대하여 무력하였다.


당시 서울 거리에서 행해지고 있는 민중들의 소란스러운 절규(絶叫)만으로 판단한다면 개혁주의 자들의 그와같은 운동은 커다란 영향을 미친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운동이 성공을 거둘 요소라고 는 전혀 없었다.


이승만 자신이나 그의 동지들도 국왕을 퇴위(退位)시킬 생각은 꿈에도 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더 욱이 그들은 조정내부에 국민들로 하여금 개화의 길로 이끌어 가는데 도움을 줄만한 자유사상 (自 由思想) 을 가진 동지를 가지지 못하였다 .


당시에는 출판물(出判物)이나 통신(通信)등 조직적인 수단도 없었기 때문에 수도(首都) 한복판에 서 연설로 여론을 일으키는 방법외에는 다른방법이 있을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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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이 있는 현재 조선호텔이 위치한 소공로 106남별궁(南別宮)이 있었던 이곳은 임진왜란당시 왜군기지로 

사용 하다가 왜군이 물러간 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을 비롯한 중국 사신이 머물르면서 

나라 사신 접대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고종황제 때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天壇)이었다1897년 

고종 34년 고종은 이곳에 환구단을 세우고 황제 즉위식을 갖었다. 환구단은 현재 황궁우와 석고, 석조 대문만 

남아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비각'은 대한제국의 대황제 곧 고종황제의 연세가 망육순에 왕으로 즉위한 지 

40년이 되는 것을 경축하기 위해 세운 기념 비각으로 고종이 왕이 아닌 황제로서 장수와 오랜 재위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것이다 




1897년 고종이  외국의  지배로부터 스스로 독립하겠다는 뜻을 천명(闡明)하고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국내정세를 다스리겠다고 선포했을때 이승만과 개혁주의자들은 참다운 계혁의 시초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황제라는 새로운 칭호도 황제 자신에게 결여(缺如)되어있는 영명성(英名性)이나  의지력을 더 강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황제는 러시아와 일본세력 사이에 끼여서 한편에 보다 큰 편력을 맡겨주고 다른 한편을 피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개혁하는 일도 이 불행한 황제 마음에 들 만큼 진전되지 못하였으며, 연달아서 밀어닥치는어지러운 사건때문에  그러한 곳에 머리를 쓸 여가도 없었다.


거기다가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궁지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려면 도리없이 어떤 행동을 반드시 필요로 하였다  그러자 황제의 측근자들은 황제에게 질 서정연한 정부를 혼란하게 위협하는시끄러운 비평배(批評輩)들을 모조리 처치하는것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황제는 그러한 측근들의 주장을 믿고 마침내 독립협회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그래서 독립형회 초대 회장인 안경수는명성황후 살해사건에 가담한 자라는 누명을 쓰고 부득히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경수에 이어 회장이 된 이완용(李完用)은 관찰사(觀察使)라는 감투에 팔려 곧 협회에서 사라졌다 .


그바람에 3대회장이 된 유치호(尹致昊)는 야반(夜半)에 그를 체포하러온 경리들을 맞았다, 그는 옷을 입을동안만 잠깐 혼자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그사이에 배재학당으로 몸을 피하였다 . 그는 그곳에 꽃혀있는 성조기 덕분에 무사할수 있었다.


독립형회 지도자  17명이 체포된 거리에는  총검을 든 군사들로 꽉 차 있었다 민주주의의 혁신파 지도자들은 국적(國賊)이라는 포고가 거리에 나붙었다 


이와중에 이승만은 아펜셀러박사집에 가서 피난중에 있는 윤치호와 그밖에 독립협회 회원들을 만 났다  그들은 이승만에게도 피난할 것을 권했으나 이승만은 이를 거절하고 그길로 경무청(警務廳) 으로 갔다  물론 그의  뒤에는 수천명의 군중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체포된 17명을 석방할 것 과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며  경무청앞에서 군중데회를 열고  연좌(連坐)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서  그날 밤을 세웠고 계속하여 몇일 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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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만민공동회를 부수기 위하여 대안문 (덕수궁)앞에 집결한 러시아가 사주한 황국협회와 보부상 패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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