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68.jpg

이승만의 만민공동회를 부수기 위하여 대안문 (덕수궁)앞에 집결한 러시아가 사주한 황국협회와 보부상 패거리들 



한편 이승만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6대독자인것을 잊지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타 일었다.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는것은 괴로운 일이었으나 이승만은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로부터 손을 뗄수는 없었다 아펜셀러박사도 이광경을 보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만은 많은 배재학당 학생들이 민중운동(民衆運動)에서 지도적인 역할릏 하고있는 그를 자랑 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 군중들 사이에는 여러가지 말이 떠 돌았는데 그중 하나는 황제가  군사들에게 발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며  또하나는 이승만을 높은 벼슬로 매수하려한다는 것이었다  즉 조정의 중심인 고영근(高永根)과 김종환(金宗漢)이 이승만에게 와서 그에게 조정에 현직(顯職)에 취임 하도록 애쓰고있노라고 말 하였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승만은 온 밤을 모닥불을 피어놓고 그칠 사이없이 군중들에게 연설하면서 그들을 단결 시켰다 만일 이 군중이 분산이 되면 군사들은 손 쉽게 지도자를 체포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흘째 밤샘에는 가장 큰 곤란이 닦쳐왔다  시위군중의 대열이 차츰 흩어져 줄어들고 남아있는 사 람들에게도 추위와 굶주림 거기에다 졸음이 덮처온 것이다

        


 

169.jpg

 

170.jpg 

    서재필이 미국으로 떠난 후 이승만의 가두연설로 시작된 초기 만민공동회 모습 이승만을 후원한 이상재선생 



이무렵  한 패의 군사가 군악대(軍樂隊)를 선두로 군중을 향해 서 행진해 왔다 그러자 그앞에 있던 군중일부가 일시에 도망쳐 버렸다 이광경을 목격한 이승만은 곧 군악대옆으로 달려가서 북치는 군사를 밀면서 방향을 바꾸도록 하였다 다행이도 군대는 무력(武力)을 행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음인지 시위군중들에게 무력을 쓰지 않고 순순히 방향을 바꾸어 행진해 가 버렸다


이튼날 조간신문(朝刊新聞)은 이 사건을 게재하고 이승만을 과격하고 성급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날 아침 이승만의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찾아와서 그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모(無謀) 한 짓으로 집안 망신을 시키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결국  이승만은 뜻을 이루고 말았다  상을 찌푸린 경리가  한사람이 이승만에게 와서 17명 을 전부 석방하였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후에 와서 이승만은 이사건을 자기 일생을 통해서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한> 사건이었다고 회상 (回想)하였다 독립협회의 지도자들도 모두 민주주의의 대승리라고 느꼈다   그래도 소동은 며칠동 안 계속되었었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계속해서 낡은 보신각(普信閣)앞 광장에서 개혁에 대한  군중대회를 개최하 였다 군중대회는 덕수궁 (德壽宮) 문앞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171.jpg

서재필이 미국으로 떠난 후 이승만의 가두연설로 시작된 만민공동회 모습



그러자 조정안에 친러시아 파들은 허두지둥 황제를 지지하는 <황국협회(皇國協會)>를 조직하고  불한당과  행상인(行商人) 보부상배(補負商輩)들을 매수하여 독립협회의 시위를 공격하고 방해하 게 하였다.


그들의 제일 공격 목표는 당연히 이승만이었다  그러자 이승만은 그들의 공격을 피하여 독일공사 관의 얕은 담벼락을 뛰어넘어 배재학당으로 피한적도 있었다 


이승만은 오랫동안 부상배(負商輩) 들의 험상궂은 얼굴과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빗자루보다도 더 긴 묵직한 몽둥이의 흉칙한 모습을  잊지 못하였다  부상배들은 군중속으로 뛰어들어 이런 몽둥이 를 닦치는 대로 휘둘렀다. 이때 시위군중들의 수가 몹시 많았고 또 그들의 감정이 순수하고  공통된 것이었기 때문에 황제는언제까지 이러한 소란을 외면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유주주의 사상을 가진 민영환(閔泳煥) 한규설(韓圭卨) 불러 이를 진정시키도록 했다

   



 172.jpg

 

 173.jpg

1896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 대관식에 참석할 당시 민명환과 윤치호의모습  왼쪽부터  경호대장 김득련 윤치호 통역 민영환 블란손(외부관리) 파스코프 동행무관 뒷줄 왼쪽부터 김도일 스테인 손희영.  1896 아관파천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밖에 있는 관리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


 

이에따라서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신하들은  군중대회에 나타나서 황제가 진정한 개혁을 약속하였 으니 제발 해산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승만과 그의 동료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속아왔으니 말로만 약속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해산명령을 거부하자 보부상배들이 또다시 습격을 해왔다  이때 군중대회는 외국공관 지역내의 임시궁(臨時宮)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황제는 신변이 위험할 탈출하기 편하도록 러시아 공사 인접지에서 기거(起居)하고 있었다 .   

 



174.jpg




  1.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5)

    초대 주미 공사관 직원 일행들. 앞줄 왼쪽부터 이상재, 이완용, 박정양(주미 공사), 이하영, 이재연이며, 뒷줄은 수행 원들이다. 이승만을 한성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 여생을 함께한 감옥동기인 월남 이상재 선생의 가솔들 당시는 그가 정신적으로나 지적...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11
    Read More
  2.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4)

    한편 이승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서술하였다 “나는 압박받는 동지를 위해 잔인한 적과 마주서서 싸웠다 내생명까지도 그약세력(弱勢力)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으나 이 같은 죽음은 단순한 사망이 아니고 영생인...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7
    Read More
  3.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3)

          1894년 11월 17일자. London News에 실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들이 조선에 들어올 당시 개선을  통과하는 모습  이승만이 감옥에 있던1900년대 초기 고종황제가 덕수궁 준명당에서 조회를 하는 모습 강개격분한 눈물을 금치 못하여 그동안에 만...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8
    Read More
  4.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2)

    “독립정신(獨立精神)”..   이 책은 그의 감옥생활  말기1904년 2월19일에 최후로 수정을 해서 석방 이 될때까지 34장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당시 국민들의 정치적 바이블이라 할수 있는 가치가 있는 책이 되었다       이승만이 옥중에 있던 1901...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11
    Read More
  5.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1)

            한성감옥 수감 시절 이승만(왼쪽에서 셋째)과 아들 봉수(태산), 이승만은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옥중 도서실 과 학교를 열기도 했다. 동료 죄수들이 손에 성경을 들고 있다.1904년경 출감이 가까운시점 드디어 서슬이 시퍼런 일제의 감시하...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5
    Read More
  6.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40)

    1899년 한성감옥에 갇힌 이승만(맨왼쪽) 종신죄인 죄수복. 옆의 사람들도 복역중인 죄수들.  이상재 유성준등 됫날 독립운동의 중심인물들이다. 이승만이 가지고 있었던 권총이 한번도 쏘지 않았다는것이  증명된 것이다  홍종우는 최정식에게 사형을 이승만...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5
    Read More
  7.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39)

          1894년 일본신문에 보도된 갑신정변의 주동자중 한사람인 김옥균이 중국 상하이(上海)의 미국 조계지 철마로(鐵馬路)에 위치한 일본인겨영 호텔 동화양행  2층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 상태에서 홍종우에게 저격 을 당하는 ...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12
    Read More
  8.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38)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가저온 일본의 운요호, 1875년 4월, 조선의 문호개방과 지배를 열망하던 일본은 해로  측량을 구실로 운요호 등 군함 3척을 강화도에 파견하여, 동해안 일대의 해로  측량과 아울러 함포 사격을 가하여 무력시위를 하였다. 이승만이 태어...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4
    Read More
  9.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37)

        1942년 일본이 획책한 대동아 공영권 전쟁중 일본이 점령한 나라.김옥균과 더불어 청년 엘리트인 빅영효를 따르는 위창 오세창등이 일본망명시절 찍은 사진.  갑신정변의 4인방중 일인인 박영효는 1861년 수원 출신으로 13세 되던 1872년 철종의 무남 독...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7
    Read More
  10.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6)

    황제는 전국적인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한 타협으로 소란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황제는 궁전앞 광화문길에 임시회장을 만들고 독립협회와 황국협회 지도자들을 모이게 하였다 . 외국의  여러 대사와 선교사들이 참...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15
    Read More
  11.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5)

      정동에 세운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셀러 선교사 동상과 배재학당 모표.  정동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이 도성 안에 들어서면서 생겨났다. 쇄국을 고수하던 조선이 제국 열강들의 강압에 의해 개항을 하면서부터이다. 1883년 5월 미국...
    Date 2018.12.09 / 단기: 4351.12.09 ByHahnJames Views6
    Read More
  12.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4)

    이승만의 만민공동회를 부수기 위하여 대안문 (덕수궁)앞에 집결한 러시아가 사주한 황국협회와 보부상 패거리들  한편 이승만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6대독자인것을 잊지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타 일었다.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는것은 괴로운 ...
    Date 2018.12.05 / 단기: 4351.12.05 ByHahnJames Views23
    Read More
  13.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3)

          보신각에서 열린 만민공공회에서 열열한 지지자가 된 월남 이상재선생이 이승만의 열변을 듣고 있는 모습.  배재학당에 서 이승만에게 처음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한글을 배운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5)  선교사 가족과 선교사들이 배재학...
    Date 2018.12.05 / 단기: 4351.12.05 ByHahnJames Views20
    Read More
  14.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2)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에 의하여 독립문이 세워지고 독립협회가 시작된 곳으로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서양문물의 신교육이 시작된 배재학당, 1885년 미국 감리교선교사 아펜셀러목사가 세운 배재학당에 고종황제가 내린 친필 현판  독립협회가 백성을 위하고...
    Date 2018.12.03 / 단기: 4351.12.03 ByHahnJames Views16
    Read More
  15.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1)

    서재필의 지도하에 독립협회는 기금을 모아 서울 서대문에 독립문(獨立門)을 세웠다       서재필이 주동이 되어 영은문을 헐고 세운 독립문과 독립협회가 주관하고 이승만이 주도한 만민공동회  이때 이승만은 이미 독립협회 안에서 지도자로서 나름대로의 ...
    Date 2018.11.20 / 단기: 4351.11.20 ByHahnJames Views17
    Read More
  16.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30)

    임오군란 당시 조선군인들의 모습과 군란을 진압한 원세개 1882년 부패하고 무능한 장교들이 포졸들에게 말 할수 없는 학대를 가하자 드디어 명성황후 와 아직도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일본인 고문관에 대한 폭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임오군란 이다 서울의 ...
    Date 2018.11.19 / 단기: 4351.11.19 ByHahnJames Views23
    Read More
  17.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29)

         1866년 병인양용 당시 강화도에 침입한 로즈제독의 프랑스 해군 및 당시 그림   대원군과 백성들은 승리에 도취되었다 중국의 국경을 포위하고 권세가 당당한 중국 황제에게 욕을 보였는가 하면 단 두척의 포함으로 일본의 요코하마항에 들어가서일본사...
    Date 2018.11.19 / 단기: 4351.11.19 ByHahnJames Views25
    Read More
  18.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28)

    그의 정책은 1592년부터 1598년에 걸친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風臣秀吉) 가 거느린 일본군 의 침략으로 나라가 파괴 되었을때부터 이어내려오는 정책인 고립주의( 孤立主義 ) 또는  쇄국 주의(鎖國主義 )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 1866년 1월...
    Date 2018.11.19 / 단기: 4351.11.19 ByHahnJames Views25
    Read More
  19.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 (27)

    러시아는 이미 한세대전에 태평양으로 진출하였고, 부동항을 구하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그세 력을 열심히 뻗쳐오고 있었다.           러일전쟁 당시의 서구신문의 풍자화 영국에서 제작된 영일동맹 풍자화  일본의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솜씨좋게 일본을 건...
    Date 2018.11.19 / 단기: 4351.11.19 ByHahnJames Views13
    Read More
  20. 건국대통령 이승만 일대기(26)

    다른 한편으로 그는 항상 정치를 갱린적으로 타개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것은 때로는 그에게 슬픔을 안겨주기도 하고 때로는 해를 당하기 까지 하였다  그는 자기 한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악(社會惡)을 조성하는 악질분자들을 그대로 묵과할수 가 없었다....
    Date 2018.11.19 / 단기: 4351.11.19 ByHahnJames Views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