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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주영(李柱郢): 
건국대 명예교수. 뉴데일리 이승만 연구소 공동대표.
1942 평북 용천 출생. 인천중-제물포고 졸업
서울대-서강대-하와이대 사학과 수학
프린스턴대-콜럼비아대 사학과에서 연구
역사학회-한국 아메리카학회 회장 역임
건국대 사학과 교수, 부총장, 대학원장 역임
주요저서: 미국의 좌파와 우파/ 미국사/ 미국현대사의 흐름/ 빼앗긴 서양문명의 역사/ 빼앗긴 우리역사 되찾기/ 한국현대사 이해/ 우남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8. 자유총선거로 정부를 세워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바꾸기 위해 미국으로

    

미⦁소공동위원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유엔 총회에서 정부수립 문제를 직접 호소해 보기 위해 미국에 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한국은 다시 긴 고난의 시기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문제의 유엔 상정에 대해 우익은 대찬성이었다. 그래서 우익진영의 통합기구인 민주의원은 그에게 ‘민주의원의장 및 대한민국대표’라는 직함을 주고, 1만 달러의 여비를 보태주었다. 


그러나 하지는 이승만이 자기를 제치고 워싱턴 정부를 직접 상대하겠다는 데 대해 분개했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미군정의 방해로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군용기나 군함을 제공해야 하는 데, 미군정이 이승만에게 그러한 편의를 제공할 리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승만은 동경의 맥아더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맥아더는 서울로 군용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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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1946년 12월 4일 김포 비행장을 출발해 도쿄에 도착했다. 맥아더는 동경에서 미국까지 군용기를 제공하려 하였으나, 미 국무부가 반대했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민간항공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하와이를 거쳐 12월 7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칼튼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조속한 정부 수립을 위해 한국문제를 유엔총회에 상정해 줄 것을 호소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정부 관계자는 어느 누구도 그를 만나 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반공⦁반소주의는 미 국무부의 좌우합작노선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언론기관과 문서를 통해 우회적으로 정계와 일반대중에게 자신의 의지를 알리려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 시절의 미국인 후원자들이 그를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로버트 올리버 박사, 변호사 존 스태거스, 원로 언론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 프레스턴 굿펠로 대령,  프레데릭 브라운 해리스 목사 등이었다. 이승만에 의해 이미 민주의원 대표로 파견되었던 임영신(任永信)과 오랫 동안 구미위원부를 맡아 운영해오던 임병직(林炳稷)도 그들을 도와 열심히 뛰었다.



미국정부에 자유총선거를 제의하다


이승만이 국무부에 제출한 서한의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남한에 일단 과도정부를 세웠다가 때가 되면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정식 통일정부를 세운다는 것, 그리고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할 때까지 미군은 남한에 주둔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덧붙여 이승만은 미 국무부 안에는 공산주의 동조 자들이 있는 것 같으며, 남한의 하지 중장도 좌익들에게 유리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소련군은 50만 공산군을 양성하고 있는 데 비해, 남한에서 미군은 전혀 그러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남한은 북한에 의해 끌려다닐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이승만의 제의에 대해 미국의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유럽, 발칸반도, 중동에서 소련의 팽창 야욕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 공감했다. 


이승만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하지 중장도 1947년 2월 미국으로 갔다.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정부수립만이 한반도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 방법이라는 기존의 정책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지 중장은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고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증언하는 과정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는 데, 그것이 이승만의 남한 과도정부 수립 주장을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47년 3월 12일 마침내 소련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유화정책에서 강경정책, 포위정책으로 바뀌게 되는 ‘트루먼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받고 있던 그리스와 터키를 경제적,군사적으로 도우려는 의도에서 발표된 선언이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는 모든 국민에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었다. 그것이 발표된 다음 날 감격한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감사의 서한을 보냈다. 뒤이어 마샬 국무장관은 한국문제에 대한 소련의 비협조를 규탄하고 남한에서 독자적인 정부수립 계획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남한과도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그런데도 국무부 관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피점령국 담당 차관보 존 힐드링 장군을 제외하고는, 국무부의 어느 누구도 이승만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전쟁장관 패터슨을 만나려고 했을 때, 국무부 관리들은 그가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며 주한미군의 입장을 어렵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자문해 줌으로써, 면담요청을 거절하도록 했다. 그처럼 미 국무부 안에는 이승만에게 적대적인 좌파 관료 세력이 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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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쿠데타를 막기 위해 서둘러 귀국


이승만이 미국으로 떠나자, 김구가 움직였다. 그는 미군정이 우익진영을 소외시키고 좌우합작위원회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데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김구는 미군정이 만든 김규식의 좌우합작위원회를 분쇄하기 위해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1947년 1월 민주의원,비상국민회의,독촉국민회 등의 우파 단체들을 모아 ‘자주독립반탁운동협의회’를 열었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은 미군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시위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전문을 민주의원에 보냈다. 그러나 김구는 반탁시위를 격렬히 벌이는 한편, 비상국민회의,민족통일총본부,독립촉성국민회를 통합하여 ‘반탁독립투쟁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는 비상국민회의에 민족통일총본부와 독립촉성국민회를 흡수한 다음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명칭을 ‘국민의회’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김구는 국민의회를 통해 임시정부를 정부로 선언하고,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이승만을 추대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승만에게는 “주권선언 시기 도래”라는 전문을 보내 그간의 상황을 알렸다.


1947년 3월 5일 김구는 미군정장관 브라운을 만나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것에 정권을 넘겨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군정청은 그것을 정권탈취를 위한 쿠데타 기도로 보고, 김구를 처벌하려 했다. 이것은 모두 이승만이 없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으므로,  이승만 계의 사람들이 김구의 행동에 반발했다. 그러자 임시정부 세력은 대표적인 이승만 지지자인 배은희(裵恩希)에게 폭력을 휘둘러 입원하게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승만은 워싱턴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김구가 임시정부 세력을 주축으로 미 군정청에 대해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귀국을 서둘렀다.  


또다시 미 국무부 좌파에 의한 귀국 방해

   

이번에도 국무부는 이승만의 귀국을 방해했다. 군용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이승만은 1947년 4월 1일을 출발일로 정하고 도쿄까지의 운임으로 900달러라는 큰돈을 지불했다. 그러나 출발 전날 저녁 갑자기 국방부로부터 군용기 탑승 허가가 취소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이승만의 귀국이 군용기를 배정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연락이 국무부로 왔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때 마침 민간 항공사인 노스웨스트의 동경 노선 시험운행 비행기가 4월 8일에 미니애폴리스를 떠날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이승만 지지자인 힐드링 장군은 이승만이 그 비행기를 타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하지 장군이 발행하는 한국 입국허가서는 얻지 못한 채 불안한 상태로 미국을 떠났다. 입국허가서는 국무부 소관이었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승만의 귀국을 방해한 국무부의 핵심 인물은 극동국장인 존 카터 빈센트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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