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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平山郡 馬山面)에서 청빈한 왕족(王族)이경선(李敬善, 1837~1912)공과 서당훈장 김창은의 외동딸인 어머니 김해 김씨(1833~1896)의 3남 2녀중 막 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형이 둘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태어나기 전에 모두 홍역으로 죽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사실상 외아들이 되었다 그의 큰누님은 황해도 해주의 우씨 집안으로 작은 누님은 평산에서 심씨 집안으로 각각 출가했다. 이박사는 이씨가문의 6대독자로 주위의 많은 사 람들 특히 부모와 누님들로부터 금지옥엽처럼 사랑받으며 자라났다.

그의 부모는 승룡이 태어나기전 평산 陵內洞(능내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가세가 기울어 살림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나 그곳에서 태어났다 승룡이 세살되던 해 그의 가족은 서울 교외 남산 언저리에 있는 桃洞 (도동)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것은 승룡의 장래교육을 위한 부모의 배려 에서 였다. 승룡은 남산 서쪽 언덕 기슭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초가집에서  스므살 때 (1895년) 까지 살았다

이승만의 부친 경선공은 보학과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유교적 선비로서 넉넉한 재산이나 탄 탄한 생계수단(관직)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 가문의 운세가 기울어진 원인이 선 조의 묘를 잘못 쓴 데 있다고 판단한 나머지 전국을 유랑하며 명당을 찾는데 열중했다. 한마디 로 낭만적 기질의 풍류객이었던 이승만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과 출세에 결정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골 서당훈장의 따님이었던 이승만의 모친은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손수 아 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면서 시작(詩作)을 훈도할 정도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학식이 높았다. 그녀는 일찍부터 싹수가 보이는 외아들을 훌륭하게 기르기위해 남편을 설득하여 거처 를 황해도 평산에서 서울로 옮겼던 것이다. 서울에서 그녀는 삯바느질로 집안살림을 꾸려가면 서 아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 하였다 후에 이승만이 출중한 학자 정치가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 은 아버지보다도 전적으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정성에 힘 입은 바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지덕사와 양녕대군 

상도동 장승백이 근처 국사봉 기슭에는 양녕대군이 잠들어 있는 묘소가 있다 양명문이라는 대 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서면, 정조 임금이 하사한 지덕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보인다 원래 이사당은 서울역 건너편 도동의 남산 초입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묘소가 있는 이곳 으로 옮겨졌다 뜰 잔디에는 멋을 풍기는 유려한 양녕대군의 시가 새겨진 여러개의 오석이 새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양녕 대군의 16대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쓴 숭모 친필 시비가 있고, 숭례문 (崇禮門)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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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위패를 모신 지덕사 도동에서 옮겼다 양녕대군의 친필 양녕대군이 쓴 숭례문 현판(현재 남대문) 


몇년전 남대문이 불탈 때 겨우 살아남은 양녕대군의 친필 숭례문 현판은 임진왜란 때도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찾는것을 포기하였던 숭례문 편액은 엉뚱하게도 광해군 때 청파동 욱 천 배다리 어귀에 파묻혀 있었고 그것을 파내어 남대문에 다시거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조선 3대 태종시대에 왕실에서 일어났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다름아닌 양녕대군의 폐세자 사건 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양녕대군은 14살에 장가 들어 이성에 눈 을 떴다 그는 17살부터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이로 보면 성욕이 한창 왕 성 할때이고 결혼한 지도 4년이 지났으니 아내 숙빈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양녕을 사로잡은 여인은 기생 봉지련이었다.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에서 봉지련을 발견한 양녕은 시종 2명을 앞세우고 그녀의 집을 몰래 찾아들어 정을 나누기 시작하였고, 급기 야 그녀를 동궁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태종은 봉지련을 옥에 가두어 두 연인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그 무렵 양녕 앞에 나타난 또 한명의 다른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기생 초궁장이었는데, 그녀는 원래 양녕의 백부인 정종이 가까이 하던 여인이었다. 초궁장을 처음 만난 양녕은 수시로 그녀를 동궁으로 불러들여 사통을 나누었고, 이를 알게 된 태종은 자신의 친형과 아들 양녕이 한 여인 을 두고 서로 사통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또 한번의 소동이 벌어졌는데, 양녕대군은 중추원 관리를 지낸 곽선의 첩 어리가 절색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납치하여 상간한 사건이다 이러한 멈추지 않는 세자 양녕의 행위에 대해 크게 분노한 태종은, 세자를 폐할 것을 결심하고 영의정 유정현 등의 상소 를 받아들여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셋째아들 충녕대군을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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