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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던 일본은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무조건 항복을 맞게된다. 세계사상 유일의 원자폭탄 투하를 당한 일본은 검으로 남을 헤친 자는 검으로 패배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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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広島・長崎原子爆彈投下, 영어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는 제2차 세계대전이 다 끝나갈 무렵 1945년 미국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는데, 8월 6일 히로시마 시에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8월 9일 나가사키 시에 나머지 한 개의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원자폭탄 두 개를 떨어트리기 전까지 6개월간 미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도시 67개에 전락상 집중하여 폭격하였다. 영국중화민국과 함께 미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강요하였으나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명령하여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1][2]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이 원자폭탄 두 개는 인류사 최초로 전쟁에서 일반 시민 학살에 쓰인 원자폭탄이었다.[3]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 센터이자 병참 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다.[4]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초기 2개월에서 4개월 동안, 히로시마에서는 90,000명에서 166,000명,나가사키에서는 60,000명에서 80,000명 정도가 사망했으며,[5] 그중 각 도시 사망자 절반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당일에 집계되었다. 히로시마 의료기관은 원폭투하 탓으로 60%가 섬광화상으로, 30%가 건물 잔해물로, 10%가 기타 원인으로 죽었다고 한 이 보고가 있은 후 다음 달에 더 많이 죽었는데 이는 원폭투하 탓에 후폭풍과 피폭과 기타 질병 합병증과 부상 탓에 발생했다. 미국에선 이 사건이 최단기에 가장 많은 시민을 죽였다고 평가하였고 15%에서 20%가 피폭으로, 20%에서 30%가 섬광화상으로, 50%에서 60%가 질병과 부상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6] 사망자들 중 대부분은 보통 시민들이었다.[7][8][9]

나가사키 원폭투하 6일 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며, 9월 2일 항복 문서[10] 에 사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한편 독일은 이미 5월 7일 유럽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이 원폭투하로 인해 전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했다.[11] 이 원자폭탄 투하 사건은 윤리적 문제와 "당시 미국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주제로 아직까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12]


히로시마는 원자 폭탄이 투하될 제 1순위 목표 도시였으며 임무 수행 중 변수가 생길 시 이를 대체할 목표 도시는 고쿠라와 나가사키였다. 8월 6일에 투하된 이유는 그 전에는 기상 문제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393사단 폭격 비행중대에 속했던 B-29 에놀라 게이는 일본 본토 영토에서 비행시간으로 6시간 떨어진 서태평양 티니언 섬 북쪽에 있던 비행장에서 이륙하여 히로시마로 향하였으며, 제 509 혼성부대 폴 티베츠 대령이 폭격기를 조종하고 지휘했다. 에놀라 게이는 두 기의 다른 B-29 폭격기와 함께 일본 본토로 향했는데, 그 두 기 중 한 기는 찰스 W. 스위니 소령이 지휘하는 그레이트 아티스트로 원폭투하 후 결과 측정을 담당했으며, 나머지 한 기는 조지 마쿼트 대위가 지휘하는 폭격기로 처음에는 기체명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후에 네세서리 이블이란 이름으로 정해졌다.[23]

티니언 섬에서 이륙한 후 각 폭격기는 산개비행을 하다가 이오 섬 고도 2,440 미터에서 재 집합한 후 일본 본토로 향했다. B-29 에놀라 게이는 목표도시 히로시마에서 고도 9,855 미터 상공에서 시야를 확보했다. 본토로 향하는 동안 해군 대령 윌리엄 파슨스가 이륙 시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리해뒀던 원폭 리틀 보이를 장착했고, 보조를 담당하던 모리스 젭슨 소위가 히로시마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 장치를 분리했다.[24]

원자 폭탄으로 인해 피부가 타버린 희생자.[25]

원폭 투하가 있기 한 시간 전, 일본 조기 경보 레이더는 본토 남쪽 부근에서 일부 미국 비행편대가 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히로시마를 포함해 많은 도시에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공습경보가 울렸다. 오전 8시 무렵, 히로시마 레이더 관측소 측에선 본토로 향해오는 비행기 기체의 숫자가 몇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공습경보를 해제했다. 연료와 기체를 아끼기 위해 비행편대가 지나가게끔 방치했다는 것이다. 기존 라디오 방송에서는 실제로 B-29 폭격기들이 포착될 시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하지만 이미 아침 7시 31분에 기상 관측 비행기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고도 9,800 미터 상공에서 히로시마의 기상 상태가 양호하다는 내용을 담은 전언을 모스 부호로 보낸 상태였다. 아침 8시 9분 티베츠 대령은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26]

60 킬로그램의 우라늄 235가 담긴 포신형 핵분열 무기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 현지 시각 08시 15분에 투하됐다. 리틀 보이는 고도 9,470 미터 상공에서 43초 동안 떨어져 도시 위 580미터 상공에서 폭파됐다.[27]B-29 에놀라 게이는 후폭풍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도시에서 벗어나 11.5 마일(약 18.5 킬로미터)을 비행했다.[28]

리틀 보이는 옆바람 때문에 본래 조준했던 아이오이 다리에서 240 미터 벗어난 히로시마 외과 병원에 투하됐다.[29] 리틀보이는 TNT 13킬로톤에 상응하는 폭발을 일으켰으며,[30] 반경 1.6 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것을 파괴했으며 11 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화재를 일으켰다.[31]미국은 도시의 12 제곱 킬로미터가 파괴된 것으로 측정했으며, 일본은 히로시마의 69%의 건물들이 파괴됐으며 그것을 제외한 31%의 건물들 중 6~7%가 손상을 입었다고 보고했다.[32]

히로시마의 인구 중 70,000명에서 80,000 명, 약 30%[33] 가 원폭 투하 당시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으며 70,000여명이 부상당했다.[34] 또한 도시의 90%의 의사들과 93%의 간호사가 사망하거나 다쳤다. 이들은 도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시내에 있었다.[35]

투하 후 상황[편집]

도쿄 NHK는 히로시마 NHK의 방송이 갑작스럽게 중지하게 되자, 다른 전화선을 이용해 방송 연결을 다시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36] 약 20분 후 도쿄 철도 전신 센터는 히로시마 북쪽으로 향해있는 전신이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았다. 히로시마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일부 철도역들에서 비공식적으로 엄청난 폭탄 투하가 있었다는 보고했으며, 이 보고는 일본 군 참모 본부에 전해졌다.

참모 본부는 반복적으로 히로시마 군지휘부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으며 이것은 곧 지휘부에 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3기의 비행기가 그렇게 큰 폭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모본부는 히로시마에 즉시 비행기를 보내 피해를 조사하고 도쿄에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지휘부는 큰일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그러한 폭탄투하는 없다며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단정 지었다.

비행기는 히로시마 남서쪽으로 향했다. 3시간 여 동안 비행을 한 끝에 비행기 조종사와 함께 파견된 참모 장교는 히로시마에서 약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폭으로 인해 생긴 거대한 연기구름을 목격했다. 비행기는 곧 도시에 다다랐으며 히로시마에 있던 모든 것이 불타고 연기에 뒤덮여있는 광경을 목격하며 히로시마 상공을 비행했다. 참모 장교는 이 사실을 도쿄에 보고한 후 즉시 피해를 측정했다.

1945년 8월 8일 미국은 도쿄 라디오에서 히로시마 폭격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보고를 받았다. 당시 라디오 내용은 이러했다. “사람, 동물, 모든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말 그대로 죽음 속에 그슬렸습니다."[37]


자료 제공: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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