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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들


1. 이승만은 하버드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대학 당국에 자신은 하루라도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야하니 2년 안에 박사학위를 주면 하버드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나 거절당해서 프린스턴으로 가서 공부하였는데, 당시 프린스턴대 총장이 이후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게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었다.

이승만은 윌슨한테 직접 박사학위를 받았다. 윌슨은 이승만을 매우 아껴서 가족파티에도 초대하기도 했다.

2. 이승만은 초등학교 6년 무상 의무교육제를 도입했다. 48년 문맹률 80%에서 10년만에 22%로 낮아졌다.

이승만은 예산의 10%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는데, 외국어 인재를 위해 한국외대가 이승만의 주도로 설립되었고, 공업교육을 위해 독립운동 시기 자신이 세웠던 하와이의 학교를 팔아 인하공대를 설립했다.

인하공대라는 이름은 인천의 '인' 하와이의 '하'자를 따서 만들었다.

한국의 첫 남녀공학 학교도 독립운동 시절인 1918년 이승만이 설립했다.

3.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7.3%로 당시 후진국의 연평균성장률 4.4%를 훨씬 앞섰다.

4.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25살 차이가 났는데, 결혼식 때 반지를 포함한 모든 결혼 비용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부담했다. 이승만이 워낙 가난했기 때문이다.

5. 이승만은 같은 친미파였던 서재필과 굉장히 달랐다. 서재필은 미국에서 유학하며 조선을 혐오하기 시작했고, 조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경우 조선의 체제를 부정하면서도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굉장히 가부장적이라 프란체스카 여사를 삼일한을 시전하기도 하였고, 서정주가 이승만 전기를 쓸때 이승만 부친의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자, 예의도 모르는 놈이라고 출판 금지를 시킨적도 있다.

서재필은 조선의 가족문화를 혐오했는데, 이승만은 6.25 전쟁 당시 '후사없이 죽게되어 불효자'라는 유서를 품속에 들고 다닐만큼 유교적 가족관을 유지했다.

6. 프린스턴 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에는 '이승만 홀'이라는 이름의 대형 강의실이 있다.

7.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고 아이젠하워를 만났을 때 태극기를 선물한 적이 있다. 아이젠하워가 태극기를 한 손으로 받자, 한 나라의 국기를 받을 때는 두손으로 받는 것이 예의라고 다시 뺏었다. 아이젠하워는 다시 두 손으로 받은 뒤 악수를 건냈다.

8. 이승만의 친아들은 어릴때 병사했고, 이후 이기붕의 친아들인 이강석을 양자로 들였다.

이강석은 정치테러와 부정선거를 행한 자신의 친아버지를 몹시도 증오하였고 결국 4.3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이 하야하자 이틀 뒤 자신의 생부와 생모 그리고 남동생을 권총으로 쏘고 자살한다.

9. 광복 1년이 지나고 미군정이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전체의 77%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원했고 14%만이 자본주의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보통선거권과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통한 사유재산권 제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10. 이승만의 유언은 성서 구절이다. 신약성서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너희는 다시는 노예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승만에 대해 잘못알려진 사실 하나

이승만이 조선 왕조를 존중했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사실임.
이승만은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원인중에는 고종황제와 구황실의 책임이 크다고보고 
구황실의 재산을 전부 몰수하여 정부에 귀속시켰음.
그때 몰수조치 안해서 나중에 이씨 왕조의 후손들이 재산반환소송 했다면
아마 그 규모가 어마어마 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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