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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一 그 장마


1920년의 내 꿈은 아주 크고 소망적이었다. 금년만 농사를 짓고는 그 돈으로 내가 소기하는 공부를 명년부터 착실히 하여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그 희망은 푸르기만 하였다.  봄부터 그 희망을 갖고 기쁘게 모든 농사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면서 철을 맞추어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여름이 지나고 추수기가 되기까지 내 모든 심혈을 다하여 농사를 짓는데 분주하게 보내었다. 일년간 애쓴 보람은 황금물결을 짓는 대풍년의 장관(壯親)을 이루고 있어서 한결 흐뭇했다. 나는 일군들과 함께 드디어 추수에 들어 갔다. 하루 2천 5백석을 타작하였다. 그러나 그 날 오후 늦게부터 오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억수로 퍼붓는 그 장마비는 그렇게나 애쓰고 기다렸던 나의 꿈을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아一 그 장마 ! 참으로 하늘도 무심하였다. 며칠을 참지 못하여 숱한 곡식을 물에 떠내려 보내다니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아예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폐농을 하지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참으로 억장이 무너져서 말도 나오지 않았으며 어떻게 해야 될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탐스럽고 무겁게 고개 숙였던 벼들은 이 거친 장마의 비바람에 무참히도 쓰러지고 떠내려가고 말았다. 계속되는 장마는 흙탕물로 벼를 뒤덮어 그 위에 수 없는 오리메들이 모여 들어서 먹고 있었다. 나는 연발로 엽총을 쏘았다. 단 두발이건만 53마리가 맞아 떨어졌다.


물오리가 물러나고 또 그칠 줄 모르던 긴 장마도 완전히 폐농을 만들어 놓고 거짓말 처럼 맑은 날씨가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3여 년을 피땀 홀려 벌었던 돈도 희망도 모두 앗아간 뒤였다. 나 뿐만 아니라 농사를 위하여 융자했던 은행도, 지주도 모두 장마로 망하고 말았다. 


나의 남가일몽(南何一夢)의 그 부푼 꿈도 여기서 얼마 동안 비통스럽게 머물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의 비통도 컸지만 민족으로서의 말 못할 비통함이 이 장마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이제 이를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서술코자 한다.



5, 노백린(慮伯離) 장군의 비행단


제1차세계대전의 종결을 선포한 미국 대통령 월슨의 강화원칙(講和原則)중 하나인 민족자결주의(民族년決主義)와 이 태왕(李 太王 . 高宗황제를 가르침)의 별세는 우리 민족의 일본에 대항하는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고종인 이태왕의 인산(因山) 이틀 전인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하여 우리 민족은 독립운동을 전개시켰다. 강력한 무력을 자랑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행진(街頭 行進)을 한 이후에도 이 운동올 계속시키기 위해서는 격명적인 통일성을 띤 정치조직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상해의 임시정부였다.


이 임시정부는 리 승만 박사를 집정관 총재(執政官總裁)로 하여 그 산하에 군무부 총장(軍務部總長)인 노 백린 선생이있었다. 그는 황해도 출신으로 구한말 정령(正領 . 현재 대령임)을 지낸 사람으로 군 고위의 교육 국장(敎育局長)의 책임을 맡은 분이기도 하였다. 또 그는 군인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보성(普成)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쳐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애국자이었다. 그는 개화기에 일본에서 경응의숙(慶應義 熟) 보통과. 일본 육군예비학교. 사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한 군인으로 문무를 겸한 사람이었다.


나라가 일본에게 예앗긴 후에 상해로 망명을 가서 임시정부의 군무부 총장으로 피선되었다. 재정이 빈약한 임시 정부에서는 독립군을 길러 내기가 너무나 약하였다. 일본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근대식 무기를 갖고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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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김종림( 뒤에서 맨 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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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김종림



이 때에 미국 가주에「벼의 왕자」라 불리는 김 종림(金 鍾林)이라 동포 한분이 있었다. 김 종림 선생은 임시정부로 연락을 하여서 노 장군을 초청하였다. 노 장군을 만난 그는 노 장군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다. 노 장군은 미국은 일본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비행기를 발명한 나라이니 여기서 우리 젊은 한인 조종사를 길러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김 선생은 노 장군을 자기 농장으로 모셔가서 비행장 할 만한 장소를 택하라고 하여 노 장군이 가르킨 그 지대를 한국인 비행조종사를 양성하는 기지(基地)로 만들었다. 우선 곧 필요한 비행기 두 대를 사들였다. 한 대는 공중용 훈련기로, 남은 한 대는 지상에서의 훈련기로 하였다. 비행기가 떴다가 앉을 수 있도록 활주로를 깔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막대한 경비가 지출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사재를 조금도 아끼지 않고 민족의 광복사업을 위해서 썼다. 비행사의 생활비,그리고 임시정부가 응당 지급해야 할 노 장군의 봉급까지 그가 맡아서 지급하였다.


이러한 그였건만 앞서의 장마 때문에 모든 것이 중단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벼의 왕자」라는 김 종림 선생의 별명도 이 장마 이후로는 두번 다시 재기 못한 채 그는 완전히 벼농사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임시정부에서 파송된 노백린 장군의 꿈도, 그리고 우리 민족의 공군숙원도 모두 좌절되고 말았다. 김 종림 선생은 그후 말년에 이르러 누구하나 찾아 주지 안는 양로원으로 들어 갔다.


여기서 고생하고 있을 때 나는 나성 총영사 노 신영(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한국의 국무총리)씨를 만나 아무도 그 옛날 김 종림 선생의 애국적인 업적을 기억해 주지 않아서 내가 이 이야기를 하였다.총영사는 한국정부에 품신하여 그가 죽기 몇일 전에 애국공로표창을 받게하였다.


참으로 이 장마의 대재난은 미국의 은행,식품점, 농업 둥에 대타격을 주었고 내 개인을 비롯 우리 민족에도 치명적인 재해를 입게 하였다. 만약 이 장마가 오지않고 맑은 날이 며칠만 더 계속 되었더라면 대 풍년을 맞이한 나는 물론 제1차세계대전 이후 기아(機飯)석상에서 허덕 이는 유럽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세계는 다른 역사의 방향으로 옮겨져 갔을 것이다. 아물든 애석하기 짝이없는 자연의 대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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