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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라 없는 슬픔

민족을 위하든 마음과 그 꿈은 한없이 넓고도 높은 것이었다. 자기중심의 포부와 행복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모두 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위하는 행동이라야 내 마음은 편안 할 수가 있었고 불안하지 않았다.

나라가 팻넷이 존재했던들 이렇게 내 유학생활이 한에 맺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민족도 남의 나라처럼 잘 살수가 있을까 하는 골몰 때문에, 그 부담감으로 해서 언제나 의욕적이어야 했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었다.


팔리택 고둥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이와 같은 마음가짐과 근면만 으로 시간을 보냈다.  전공인 전기과를 위시해 다수의 교양과목 및 부전 공과목으로 교과 과정이 꾸며져 있었다.  공부는 자기의 포부와 취미가 있다고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거기에는 피땀의 결정체가 불철주야 이루어져야 했다. 참으로 일사(一死)를 각오한 공부였다. 미국태생 의 학생들은 사전없이 책을 읽어나가고 외우는 그 공부가 한없이 부러 웠다. 그 뿐인가? 그들은 선생이 무엇을 설명해도 자기들의 모국어인 고로 이해가 빨랐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를 못했다. 사전으로 그 책 내 용을 파악해야 했으며 눈치로 선생의 설명을 어림짐작해야 했다. 이 고충은 외국에서 공부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내말을 피부로 실감했을 것이다.

몇 권의 책을 보는 동안에 영어사전은 손때가 검게 묻기 시작해 차차 그 자리에 홈이 파이고 낡아 떨어졌다. 이러기를 몇 번씩이나 되풀이할 때 나의 영어실력도 상당히 향상돼 갔다. 따라서 학과목도 결코 남을 앞세우지 않았다.

어느 영어시간이었다. 담당 선생님은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재 치가 있는 금발의 여선생이었다. 그 여선생은 우리반의 학생들에게 영시(英詩)를 짓게 하였다. 어릴 때에 한시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 만 영시를 지으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을 모으고「나라 없는 사람」(Man without country) 이 라는 제하(題下)에 또박 또박 영어단어를 늘어 놓으면서 그 시제(詩題)대로 내 착찹한 심회를 옮겨 놓았다. 시라고 썼지만 그것이 영시의 체제와 구상이 되었는지 나 혼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 여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시를 대충 훑어보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깨끗이 정서를 하여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 선생의 말대로 했더니 그녀는 반 학생 들에게 나의 시가 아주 감명적 이 라고 하면서 이 시는 교지(校誌)에 싣겠다고 하였다. 과연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 학교의 연감지(Years Book)에 나의 시가 실려졌다.

나는 그 시가 잘 되고 안 되고 간에 나라 없는 내 설움을 그들이 공명을 하여 준데 대해서 감사하고 기뻤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과 그 비극이 얼마나 비참한 가를 어디에 비교 할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 일엽편주와 같고 높은 창공에 원혼과 같다 하겠다. 언제 나 정처 없이 한에 사무쳐 울다가 지쳐 원귀(免鬼)로 끝나고마는 인생이었다. 민족의 피를 타고난 자 그 민족의 의식과 양심을 가진 이상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은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브가네살에 의해서 나라를 잃었을 때와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들 민족이 세계로 홀어지게 되었을 때,그 비참한 비극이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눈물의 선지자인 예러1미야는 그들의 나라가 없어지는 것올 보고 너무나 울었기에「눈물의 선지자」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예수는 주후 70년에 무너질 예루살렘에 대해서 한없이 울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라는 그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은 철저히 무너졌다. 이스라엘은 금세기에 와서 나라를 일으킬 때까지 약 2천년간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해야 했다. 이 설움은 세계 역사상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없는 미증유(未管有)의 비극을 창조하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서부터 히틀러의 유태인 6백만 명 학살사건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비극사로 꾸며져 있다. 이러한 비극을 우리 민족은 당해야 했었다. 강산도,말과 글도,몸과 정신까지도 일본은 강탈을 하였고 또 우리 민족을 완전히 말살해 버리려고 했었다. 민족의 존재 의식을 부르짖는 3.1 독립만세를 그들은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들의 총알이 없어지기까지 그들은 무차별 사살을 했다.우리 민족은 그들의 야욕을 채우는 수단에 불과했다. 만주와 중국대 륙을 삼켜서 소위 그들의 대동아건설을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여기에 내 민족은 그들의 완전한 노예로서 살아야 했었다. 노예민족은 그들의 자유도, 그들의 행복도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직 일제의 혹독한 철추(鐵推)만이 있을따름이다. 이러한 민족이 그들의 압박을 벗어나 자유의 땅 미국에 와서 생활하고 시를 지으라 하니 자연히「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시가 창작되었던 것이다.

다시는 내 민족은 어떠한 나라든지 그들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자유스러운 존재로 태어난고로 어떠한 지배도 받아서는 안된다. 지배 그 자체는 약육강식의 엽기적(操奇的)인 살인 행위와 같다. 다양성의 세계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우주만물이 제각기 자기 특성을 갖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자연법칙에의 도전이다.

그런고로 내 민족은 자주독립이 영원한 것이어야 하고 그 민족의 개개인도 천부의 자주성이 영원히 간직되어야 하며 보장되어야 한다. 이 법칙이 깨어질 때 그 민족은 그 이상의 불행이 없고 세계 또한 평화와 발전이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 또한 자기 행복이 말살되며 따라서 민족의 번영과 나라의 발전이 단절되고 만다. 어떠한 사정과 역경에 놓인다하더라도 강국이나 강자를 막론하고 남의 나라를 예속시켜서는 안되며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자연법칙인고로 모든 법 위에 있으며 모든 이론위에 존재하며 또 존재해야 한다.

바라기는 내 민족 천만대에 애국애민(愛國愛民)의 법칙과 이론을 기조로 해서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 그 지킴에는 망국의 설움도, 개인의 불행도 없다. 청운의 푸른 꿈도 이것을 갖지 못했던고로 나와 내 민족은 한없는 불행의 울음을 울어야 했었다.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민족전체가 사력을 다해 지켜나가야 한다.

아 「나라 없는 사람」을 영시(詩)로 영시(英詩)화하지 아니하면 안 되었던 이 때의 심회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다만 그 악동과 같은 참혹상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라 없는 사람으로 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나라 있는 사람으로 살 것을 충심(與心)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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