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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학도의 사업


굽힐 줄 모르는 나의 학구열은 어쩔 수 없이 사업에 손을 대었다. 이 왕 결심하고 시작했던 공부를 돈없다고 중도에 끝올 내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어쩔 수 없었던 몸부림이었다. 밑천도, 경험도 없이 빈주먹으로 사업올 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그것은 돈키호테와 같은 무모한 짓이 라고 밖에 해석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둣이 비장한 결심과 신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로 인도하였다. 나는 어학학교 시절의 동기동창이었더 김 용중씨름 만났다. 근는 이부 계통이 나성 고등학교를 졸업하 여 하바드대학 진학유 위하 공부름 하러니 그 역시 학비저것음 하고 있었다. 다 같은 입장의 처지에 있었던 우리들은 여러가지 궁리 끝에 상품의 위탁판매를 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나성 다운타운으로 들어가서 채소, 과일 둥 각종 농작물을 도매로 넘겨주는 새벽 시장으로 향하였다. 위탁판매를 한다고 했지만 처음엔 일정한 사무실과 가게도 없었다. 길 거리가 우리들의 사무실과 가게로 대용되었다.  각 지방에서 들어오는 농작물을 실은 추럭을 붙들고 도매상으로 인도하여 주거나 시세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하였다.


이러다 보니 각 도매상에서도 좋은 물건을 가급적 자기 상점으로 소개하여 줄 것을 청원하였다. 곧 이 일이 익숙하여지자 숫제 우리들은 각 도매상으로 연락을 하여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주문을 받아 놓았다가 농산물이 입하되면 그리로 인도하여 10%의 커미션(구전)을 먹었다. 김 호씨는 몸건을 나에게 위탁시켰다. 자신의 농장 (Kim Brother)과 남의 것을 사서 위탁을 시켰다. 넥타린,플럼(자두),포도, 복숭아와 토마토 둥 김호씨의 물건을 우리가 일체 위임을 받아 팔아주었다.


그러나 김 호씨는 부동산에 지나치게 투자해 상당한 부채를 지었다. 임일 같은 사람은 김호씨가 부채를 못 갚을까 해서 물건을 팔아주 말라고까지 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우리를 찾았다. 그리고 각종 유색 인종, 심지어는 백인들까지도 우리를 찾는 자가 있었다. 두 젊은 학생이 아주 재빠르고 명석하게 그들의 물건을 사고팔아 주는데 신용까지 있으니 한 번 찾았던 고객들은 모두 우리들의 단곤손님이 되었다.


우리들은 이 사업 경영의 3대원칙을 설정하였다. 이를 테면


첫째 신용으로 사업의 근본을 삼고

둘째 입하(入荷)되는 물건은 양호해야 하며

쎄째 언제나 고객이 찾는 물건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였다. 우리가 신용본위로 이 사업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저질품으로 우리의 신용은 추락될 수 있고 또 그것이 비록 이룩되었다 하더라도 고객 이 찾는 여러가지 물건이 없으면 사업이 한산하여지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우리가 착수하였던 이 사업은 승승장구(勝勝長驅)로 번창해 갔다. 당시 스토어는 24시간 오픈이었는데 고객은 상기 김호씨 외에 중가주에서 온 샘,바이구치씨와 래빈씨 둥이었다. 1827년 여름에 시작하였던 우리 사업은 그 해 번 돈 만으로도 공부를 계속할수 있게 되었다. 동서의 격을 두고 공부하던 김 용중씨는 여름방학을 마치고 가을 학기가 시작할 때 쯤 먼저 동부의 하바드로 가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그 후에도 사업을 계속하여 한 여름동안 벌어서 하바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광복 독립을 동분서주 하면서 민족을 위한 피눈 물나는 투命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43년 11월에는 미국의 서울 워싱터 에서 「한국사정사」를 설립 하더니 동년 동원 22일에「한국의 소리」(The Voice of Korea by the Korean Afair Institute Washinton, D. C.) 라는"월보(月報)를 발행했다.


그는 이 월보를 발간함에 있어서 재정적인 빈곤을 타계하기 위한 일환책으로써 본인이 사장인 동시에 주필을 겸임하는 역군이기도 하였다. 동사의 목적을 대한인의 이상과 바램이 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여 국제적 친선을 도모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그의 민족을 위한 애국심과 필봉은 워싱턴 정가(政街)로 하여금 한국인에 대한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그가 워싱턴으로 떠난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이 일을 늦가올까지 맡아서 했었다. 이제 엄연히 「김.송 위탁 판매소」 K&S Jobbers) 라고 형세하는 이상 누군가 한 사람이 남아서 과일철까지 이 사업을 계속해야 했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1년 중 겨울 학기와 봄 학기밖에 공부할 수 없게 되었다.


번창일로에 있는 이 사업을 계속 시키기 위해서는 남다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갖고 매일매일 고객을 대해야 했었다. 일단 판매의 위탁을 받 으면 매일 물가변동의 추세를 예리하게 살피어 가장 적절한 가격에 매각.처분을 했야 했다. 매각품에 대해서는 은행 수표, 개인 수표, 영수 증 둥을 첨부해 놓고 거기에다 모든 관계 장부를 공개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객들은 우리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언제나 신용하여 그들의 물건을 맡겼다. 그래서 일정한 거주지와 연락처를 갖고 수십 년간 단골손님을 대히-며 상권을 독점하고 있던 백인의 지반을 뚫고 사업올 할 수 있었다. 자본없는 외국 학도의 핸디캡을 오로지 우리 들의 진실과 성실, 명석한 두뇌의 활동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사업은 오늘 날까지 계속하게 되었다. 실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이다. 기어코 내가 공부해야 되겠다는 그 비장한 결심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기적적으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 기적은 잃어버린 나라를 찾겠다는 망명학도의 한탄과 눈물, 피땀으로 생겨난 것이다. 빈주먹으로 찾아 나선 외국인의 상가에 남보다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들어가고 하는 그 생활에 육체적인 피로도 대단하였다. 더군다나 김 용중씨가 하바드로 떠난 이후부터는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고로 침식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일이 있는 시간이 기상시간이었고, 일을 마치는 그 시간이 먹고 자는 시간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코피가 터지는 것이 빈번해도 호흡을 하고 있는 한 매일 같이 내 생활은 조금도 변화없이 화신(化神)처럼 살아 움직였다.


미국인은 우리들의 체력보다 월씬 강했다. 그들은 서구적인 거구의 체력도 체력이지만 미국의 장구한 개척노동에서 체력이 더욱 단련되어 있었다. 부지런하고 민첩했다. 그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더 오래 그 많은 일을 혼자서 했으니 내 몸은 피로한 나머지 마땅히 쓰러져서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라를 찾고자 하는 필자의 망명 고학도의 집요한 결심은 그 피로와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다. 오직 일념, 거기에는 피로와 죽음의 느낌이 있을 수 없었다.  그 느낌이 없을진데 무통(無痛)으로 일하고 또 일할 수가 있었다. 책을 읽는데는 독서삼매가 있고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이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도,불면도, 피로도 모두 잊은 채 사업에만 열중했었다. 남들이 10년 걸려서 혹은 평생을 걸려서도 못하는 것을 나는 이 투지와 노력으로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운이 좋고 재주가 많아서 일확천금을 쉽게 얻었다고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를 아니하였다. 돈을 벌어야 공부할 수 있다는 필사적인 생각과 노력이 따 랐다. 가만히 머물다가 갑자기 얻어진 돈이 아니었다. 1불을 벌기 위해서 내 두뇌를 전자계산기와 같이 돌려야 하였다. 마음도 몸도 하나가 되어서 돈을 버는데 집중해야 하였다. 거기에는 과학적인 분석이 따랐 고 기계와 같은 움직임도 있었다. 그래서 얻어진 돈은 참으로 값지고 귀했다. 한푼 두푼 수중으로 들어오는 돈은 절대로 생각없이 지출된 일 이 없었다. 그토록 조국을 위한 공부와 학비를 위해서 차곡차곡 은행에 저축이 되었다.  학비를 충당하고도 돈이 남아 돌아가기 시작할 때 부터는 더욱 그 돈은 귀하게 취급되어 가치를 아는 자라야 그 용도의 가치를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 가치를 모르면 자연히 낭비와 자기 멸망 을 재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돈 없는 생활에서 돈 있는 생활로 옮겨갈 때에 자기 인간의 자화상(自盡像)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그 변화가 민 족과 인各를 위한 것이 못되고 자만으로 인한 유아독존적인 인간 형성이 되어 민족과 그 사회를 문란하게 만들고 혼탁하게 소용돌이 쳐서 끝내 자멸로 끝나고 마는 그와 같은 인간형성을 두려워하였다.


내 사업의 목적은 첫째도 민족을 위해서, 둘째도 민족을 위해서,셋째도 민족을 위해서 설정하였다. 그 민족사업은 내가 최일선에 나타나서 내 명안(名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내 민족의 지도자와 그 단체를 위해서 배후에 힘이 되어 주고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굳혔다. 일심일체와 대동단결을 이러한 사상이 선행된 기반 위에서 실질 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러한 마음과 움직임이 없이는 흡인력이 없는 모래모임과 같은 것이라 결정했었다.


그 일심동체감은 내 스스로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왔다. 그 누구의 권고와 설득,협박과 강압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조국이 없어 질 때 나도 모르게 통곡으로 그것을 비통했던 것과 같이 이 역시 비통의 절규에서 저절로 취해진 내 스스로의 신진대사였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그 독립운동을 하고 싶었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면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인생의 고요 속에 내 생을 찾고 싶었고 그 고요에서 오는 무명인(無名人)의 숨은 역사를 창조하고 싶었다. 인생이 짧고 덧없지만 이 길로 내 생을 꾸미고 내 생의 궁극적인 보람을 삼기로 하였다. 고요의 삶과 인생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하고 그 번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세상 인간들이 버린 그 길이라도 이 길 로써 숨은 비화(秘話)를 나 혼자 갖고 싶었다.


태양계가 그 궤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돌고 있어도 그 궤도 운행을 보거 나 들은 사람이 없고 산천초목이 밤낮 자라고 호흡을 하여도 그 자 라는 순간과 그 소리를 들은 이가 없다. 천계와 지계가 모두 이러하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 자연을 따라 살고 싶었다. 참 인생의 요람적인 사고 행위인 줄을 알았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와 자연법칙에 거슬리는 행위가 아니고 거기에 순응하는 행위인 줄을 믿었다. 이 방법만이 민족의 진정한 독립이 순조롭 게 약속되며 또한 그것이 잘 이룩되리라 믿었다. 이를 어길 때 독립의 과정과 독립 후의 민족 장래는 파란만장의 운명을 못 면하리라 확신하였다.



그렇다 ! 이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사업을 운영하자! 내 인생의 공부도, 사업도 모두 조용한 우국지심으로 살아가리라는 결심을 단단히 하였다. 이 결심은 한 번도 내 인생의 노정 중에 변함없이 오늘에 이르 고 있다. 고학도의 사업은 내 일생을 이렇게 지배하여 나대로의 만족한 삶을 살도록 하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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