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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년 만의 고국산천

조국을 찾겠다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1930년 늦가올이었다. 망망대해에 일본 아사마마루호에 몸을싣고 멀리 조국으로 행하니 그 심정 헤아릴 수 없이 착잡하였다. 약관 22세의 젊은 나이로 조국을 떠나 36~7세의 장년이 되어 아직도 독립을 못본 채 조국을 찾아가려니 절로 슬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부는 울지 안는다. 하나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당시 태평양 노선에는 임본의 아사마마루와 추양 호의 두 배가 다녔다. 일본이 한국에 동양척식회사를 세우고 미국에서 빌린 돈을 갚는데 한국의 재산을 빼앗아 춘양호로 실어 날랐다. 나는 귀국시 치과의사 이 유일씨와 동행이쇼다. 고국방문 길은 아사 마마루 호를 타고 갔다. 동행한 이 유일씨는 스탁톤에서 개업을 했는데 국민회 총회장 이 화목씨의 사위였다. 미국에서 치과병원을 개업, 상당한 인망을 얻었는데 부인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뒤 얼마 안 있어 이 씨마저 세상을 떠나 장모가 사위의 재산을 인수받았다.


조국아 내조국아 십년을 더기다려 오늘이 아니외다.

길고긴 망명생활 수없는 피눈물로 독립을 기다렸다.

그날이 오기까지 몹시도 애를썼다.

갈날도 아니건만 이몸을 배에싣고 먼바다 바라본다.

저멀리 내조국에 백의의 민족혼이 주야로 울고있다.

그참상 너무슬퍼 장부의 이심정에 눈물만 고여든다.

조국아 내조국아 내어이 이다지도 비통만 남아있나.


갑판 위에 갈매기들도 저렇게 자유스러워 주위를 싸고 도는데 이 내 몸은 어찌하여 그 자유마저 매앗긴 내 조국을 찾아야 하나하는 그 슬픈 감회로 시를 구상해 보기도 하였다. 슬픈 시를 시인이 아니면서도 읊게 되는 망국 유학도의 유한(有恨)은 저 넓고 깊은 태평양 물에 서리었다.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조국애는 두 주먹에 힘을 주고 앞을 직시하면서 외쳤다.


백두산 천지못 마르지 않고
압록강 푸른물 그대로 홀러
한강물 여전히 남산을 돌때
조국은 한사코 영원히 있다.

몽고족 거란족 여진족 한족 
수없는 침노를 되풀이 해도 
굽힐줄 모르는 민족의 투혼 
역사와 한가지 오늘에 있다.

임진난 침라적 혼났던 왜적 
아직도 그버룻 오늘날 까지 
못고쳐 만행을 일삼는 그들 
기필코 그악습 고이어 주리.

찬란한 반만년 우리의 역사
저들을 기르고 길렀었 건만 
은혜를 저버린 간악한 왜적 
하늘이 유황불 내리어 치리.


이와 같이 조국에 대한 회포와 일본에 대한 분노로 태양이 하늘 복판 에서 직사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들을 태운 배는 검푸른 물결 을 헤쳐 나갔다. 미국 본토가 멀어지고 하와이를 지난 지도 오래 되니 이윽고 적도(敵都) 동경에 정박하게 되었다. 섬족인 왜구(第底)가 우글거리는 소굴이라고 생각되니 그들의 산야와 하늘까지 보기 싫었다. 섬 오랑캐가 하늘 넓은 줄 모르고 지각없이 흥청대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당시 미국 유학생으로 귀국하던 사람 중에는 주 요섭씨와 송복순이라는 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있었는데 특히 주 요섭씨와 송복순씨와는 동경에서 시모노세끼까지 같이 동행 했다. 동경에서 하관까지 기차로 오면서 노상 그러한 마음이었기에 그들 나 라의 경치와 풍물은 바르게 감상되지 않았다.

시종일관 오직 울분으로만이 나의 뇌를 맴돌고 있었다. 선린국(善, 國)이 되어 일본을 이렇게 기차로 여행하였다면 일본의 대소명소(大小 名所)룰 자연 풍경과 함께 관광(觀光)하였을 것이다. 울분과 원수가 맺혔으니 저들의 자랑거리도 나의 눈에는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다만 속히 그들의 나라를 빠져 나가고 싶었다.


하관에서 부산행 연락선을 랐다. 사람의 얼굴표정을 보아도 곧 누가 우리 민족이며 일본인인지 금방 식별할 수 있었다. 우울과 창백으로 일관된 나의 불쌍한 동족에 대비 (對比)해 일본인은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 우는 안하무인격의 부랑자들이었다. 나는 배멀미를 하지않는 사람이었 지만 그들과의 동승(同乘)으로 인한 거부 현상(相否現%)이 나를 몹시도 괴롭혔다. 현해탄의 물결은 동족의 눈물이 변한 것과 같았고 그 눈물의 물결에 오고가는 수많은 내 동족들이 한없이 울었었다.

일본으로 끌려간 부역민,노예 노동자들, 독립군,유학생 둥이 얼마나 그들의 학정에 울었던가. 고국산천이 가까와 올수록 내조국애는 긴박하기만 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고국산천인 부산 항구가 차차 그 윤곽을 드러내자 복받쳐 오르는 통곡은 억누를 길이 없었다.

아一 몽매에도 그리던 저 조국의 산하여! 15년 만에 고국을 찾아오 니 내 마음을 어디에 둘 바를 몰랐다. 조국을 오랫만에 대하는 그 무거운 침묵은 한동안 멍하니 선채 아무도 모르는 눈물만이 두 뺨을 타고 내려왔다.

선조 25년 즉,1592년 15만 대군으로 우리의 부산 앞바다를 통하여 침노했던 임진왜란이 부산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지난날의 우리 역사가 회상되니 더욱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불붙는 둣하였다. 소서행장(小西 行長)을 수장(首將)으로 하여 가등청정(加膜淸正), 흑전장정(黑田長政) 둥이 삼로로 나뉘어 우리 국토를 더럽힌 7년 만에 그들은 황급히 물러서야 했었다. 왜군의 퇴로를 막아 한 사람도 살아서 못 돌아가게 부산 앞바다에서 완전 섬멸을 독려(督動)했던 이 순신 장군은 그들의 염라대 왕이었다.

이 순신 장군은 이 싸움에서 1598년 11월 19일 장렬한 순국을 했었 다. 그 초겨울의 싸움에서 숨진 이 순신 장군의 영혼이 전바다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똑같은 바다,똑같은 계절에 왜놈을 생각하니 이 순신 장군의 유언이 소스라쳐 떠올랐다. 적의 유탄에 맞아 쓰러지는 그 순간 에도 주의 사람에게 유언하기를 「내 죽음을 감추고 끝까지 추적하여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게 하라」는 그 준엄한 말씀이 지금도 내 귓전을 두드렸다.

그런 부산 앞바다이건만 겁없이 남의 나라를 침라하여 어엿이 자기네 들 국기를 배에도,항구에도 꽃아 놓았다. 반드시 이 만행을 이 순신과 같은 어른들의 넋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 분의 유언이 지 상 명령처럼 들리고 있는데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이 어떻게 우리 조국에 서 퇴각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그간 저지른 만행을 우리 민족 에게 어떻게 보상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우리 민족과 역사는 그것 을 서릿발같이 심판할 것이다.

이러한 심리변화로 어느 정도 내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며 부산 선창가와 시가를 쏘다니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피를 토하며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모록 밤낮으로 기다리며 애타게 갈구했던 내 조국에 발을 믿고 보니 꿈만 같았다. 망명 전에 보고 느꼈던 조국의 형편보다 더 악화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를 거닐고 있는 내 동족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피골이 상접한 모양들이 었다.

맥이 풀리고 정신없는 사람인 양 다 떨어진 옷가지를 걸치고 지나가 는 사람들의 모습은 힌눈으로 조국이 없는 증거로 나타났다. 우리가 부 산항에서 내려 주 요섭 일행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일본경 찰이 송 복순을 수상 경찰서에서 연행하면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피해서 우리의 목적지로 향했었다. 그런데 긴 칼 차고 장총을 메고 신작로 한복관을 말을 타고 신나게 달리 는 일본 헌병과 경찰, 그리고 인력거를 타고 유유한 모습을 나타내는 일본 옷의 그림자들은 조선이 그들의 속국인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좀 근대적인 모습을 드러낸 시설과 건물은 일본의 군사나 식민 목적의 시설이고 건물이었다.

산수나 경치가 좋은 곳은 일본인의 주택 모양으로 된 호화저택이 군 데군데에서 볼 수 있었다. 부둣가의 간판을 비롯해서 시내의 모든 간판 들이 일본 것 일색으로 되어 있었다. 모든 산업 부문이 정치의 예속 에서 경제의 완전 종속으로 일본은 우리 경제를 악착같이 수탈하고 있었다.

음식점에 로러 밥을 만 그릇 사먹으려고해도 쌀밥이 없고 잡곡밥이었다. 이유인즉「쌀을 팔아서 좁쌀을 사먹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량공급 기지가 되어 모든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기 때 문이다. 그리고 이 쌀의 부족량은 만주로부터 잡곡을 사들여 보충했다. 만주 좁쌀의 수입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이었던 1912년에 겨우 1만5천 석(石)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 내가 조국을 방문한 1930년에는 1백70만 석이나 되었다. 그럴 것이 1930년도의 총 쌀 생산량이 1천3백70만석인데 그 수출은5백 40만석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쌀이 잉여생산이 되어서 수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급자족도 모자라는 때가 있는데도 또 총 쌀 생산고에서 3분의 1을 착취하여 갔었다.


그런즉 15년 만에 찾아온 내 조국의 동포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거리를 배회해야 했고 일본인들은 호화판의 궁궐같은 별장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 조국의 비참한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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