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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무를 심는 마음



서울을 다녀온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전주로 내려갔다. 신흥 중학교에 들렀더니 그 옛날 동료 교사들이 몇 분 그대로 봉직하고 있었다. 한문 선생이었던 김진상(金鎭相),하 경덕(河慶德) 그리고 일어 선생인 김 건표(金建約) 둥 선생들이 기억이 난다. 후에 하 선생의 아들들은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귀국했었다. 그들 중에 하 태성이란 이름을 가진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 선생님과 다른 몇 분의 친지를 만났을 때 그들의 심중은 나라 없는 설움으로 얽혀져 있었다. 광주 학생 사건 이후에는 한국 교육계는 더욱 처참한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광주 여학생을 모욕한데서 우 발된 만큼 일본의 한국인 학대는 날이 갈수록 더 하였다. 뜻있는 인사 들은 지하로 숨어 버리거나 아니면 망명을 해버려 사람만나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내가 전주 신홍 중학교에 갔을 때 학교 정문 딸기밭에 일본 형사가 지켜서서 교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일인 형사의 허락을 받고 학교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홍 중학교 시절의 동료교사들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 버 리고 남은 교직원은 몇 사람 안 되었다. 나는 내가 미국에 가기 전학교 주위에 심은 나무들을 구경했다. 무심한 세월 속에도 나무들은 몰라 볼 정도로 자라있었다.



다시 금산 부동면 경 당리로 돌아온 나는 일본형사의 조사와 미행속에 서 그날그날을 향리에서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목을 사다 교회를 중심으로 동네 주위에 식목을 했다. 엄동설한 끝에 봄을 맞은 내 고향 동산에 그저 나무를 심고 싶었다. 일본의 부질없는 감시만 받고 살 것 이 아니라 그들의 감시망 속에서도 나무를 심는 내 마음의 뜻을 나타내고 싶었다.


얼은 땅에 봄빛을 받아 녹은 그 대지 위에 땅을 파고 여러가지 나무 를 심는 내 마음은 조국의 봄이 어느 날엔가 찾아올 줄을 믿고 식수(植 樹)를 한 것이다. 한 그루, 한 그루 심고 또 심으면서 조국의 봄빛을 맞이했다. 매일같이 식수에 전념하고 있는 나를 일본 형사는 이상한 둣 밀리서 바라 보기만 했다.


내가 태어난 곳,내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자랐던 곳, 소꼽 장난하던 친구들과 한없이 행복하게 뛰어 놀던 곳, 이곳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일인지 몰랐다. 아주 나약한 실버들과 같은 묘목이지만 봄, 여름,가올,겨울이 지나는 동안에 연륜의 나이 바퀴는 더해진다. 그리고 그 나무는 동네의 정자와 숲을 만들어서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내 동네를 만들어 줄 것을 생각하니 팽이와 삽을 쥔 나의 손과 팔에는 힘이 솟아올랐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대지를 우리에게 허락해 준 이땅, 봄이면 아지랑 이와 산새가 우짖는 그 조화에서 봄은 새로운 생명의 신기루를 이루어 조국의 삼라만상은 여름과 함께 푸르러진다. 다온다습(多溫多濕)의 기후는 무엇이던 심어 놓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서 오곡백과와 울창한 산림이 되고 만다. 가을의 절기는 풍요의 추수기를 주고 아름다운 황금 물걸과 불같은 단풍을 준다. 한겨울의 설경(雪景)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거룩한 마음까지 일깨워 준다. 거치른 동장군 의 레습은 여름내내 모든 잡균을 동사(凍死)시키고 땅을 한결 부드럽게 해 준다.



이러한 내 조국의 대지에 한없는 사랑을 느끼면서 나는 땅을 파고 흙 냄새를 깊숙히 맡았다. 조국의 흙냄새와 그 산야의 아름다움을 이국의 하늘 밑에서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했던가. 이를 회상하면 더욱 내 조국의 대지는 사랑스러워졌다.


이 때 심었던 나무는 그 후 검푸르게 자랐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나무 가운데는 두 은행 나무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 은행 나무는 당시 교회 뒷뜰에 심어 놓은 것이다. 은행 나무는 짝을 지어 심어야 한다기에 그대로 했더니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한 은행 나무는 동네 아이들이 가지를 자르고 해서 무성하지 못하나 한 나무는 아주 무성하여 가을이 면 은행 열매를 몇 섬으로 딸 정도이다.


조카들이 이 은행 나무의 씨를 받아 심어서 오늘날 나의 향리에는 은행 나무가 많다. 해방 이후 내가 내 고향을 찾아갔을 때 내가 심은 이 은행 나무앞에 묵묵히 선 일이있었다. 나라 없었던 그 시절에 나무를 심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니 망연자실(法然自失) 그 나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나무가 자라던 그날 싹이 트고,잎이 돋고, 나무가지가 팔방으로 맨어 나갈 때 일본의 세력은 전쟁으로 갑자기 쇠잔하여 망해 버리고 내 조국의 광복은 회복되었던 것이다. 유물론을 배격하고 철저한 유심론적 애국심을 나무에 심었더니 그 나무는 결국 독립된 조국의 하늘을 우솔 처럼 폈었다.


나무를 심을 때의 마음은 애국이 결코 갑자기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봄부터 서서히 가을까지 피는 무궁화 같이 십년이고 백년이고 그 날이 오기까지 무한히 참고 끈질기게 기다림에 있었다. 민족은 영원한 것 이고 결코 정치처럼 생명이 짧은 단명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런즉 민족애는 나무를 심듯, 오랫동안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그 나무들은 번창하여 옛날을 상기시키고 또 나무의 후손들이 그 뜻 속에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 당시 나무를 심은 내 마음은 아직도 늙을 줄 모르고 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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