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9일 아침 8시경 나주 시외버스 터미널은 대합실과 광장 모두 빽빽이 들어선 인파와 버스들로 뒤엉켜 아수라장 상태에서 나주경찰서 보안과장이 전투복 차림으로 호각을 불어대며 교통정리를 하면서 광주로 진입하는 버스를 통제하고 있었다.

혼잡한 가운데 김대중 계열로 알려졌던 사람들이 광주에서 지금 학생들이 계엄군들에게 죽어 나가고 있으니 모두 빨리 광주로 가야 한다고 선동을 하고 있었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런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광주로 진압을 위해 모든 경찰관들이 경찰서를 비우고 필수요원만 남았던 경찰서는 12시 정오가 되자 수가 불어 난 군중들의 함성과 위협에 몇 안 남은 경찰관들이 도피를 하자 그대로 농기구나 몽둥이가 아닌 총기로 무장한 군중들 손에 경찰서가 넘어가고 말았다.
도로에는 화물차량과 버스들이 질주하는데 모두 가 각목과 칼빈 소총 등으로 무장한 채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요란한 함성과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경찰서 무기고가 털렸던 것이었다.
이 때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새 군용 트럭 2대가 질주하며 예비군 대대 무기고 쪽을 향해 소음을 내며 달렸는데, 잠시 후 무기고 블록 담장이 굉음과 함께 대형 군용 구난 트럭의 전진 충격으로 무너졌고, 재차 충격을 가하자 삽시간에 무기고 담장은 박살이 나고, 뒤이어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무기고를 기습을 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익은 김대중 쪽 정치조직 사람들도 많이 보였지만 전혀 모르는 장발을 한 젊은 남자들도 뒤섞여 있었고, 나주 사람들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도 각목을 들고 오가고 있었는데, 피신을 해 숨어 있던 경찰관들은 김대중의 반란이라고 수군거렸다.
오후 3시에 예비군 대대 무기고가 피습을 당했는데, M1과 칼빈 소총만 1700정. 중화기인 LMG30, LMG50 기관총과 실탄과 수류탄이 든 상자 등이 통째로 이을설이 파견한 북한군과 김대중 사조직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무기고에서 다량의 무기를 꺼낸 북한군과 김대중 사조직원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기들을 트럭에 실으면서 서로 수군거리는데 어느덧 해가 기울고, 지휘관인 듯한 장발의 남자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이런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벌써 광주 교도소에 도착을 해서 교도소를 접수했어야 하는데, 김대중 쪽 사람들이 행동을 하는 것이 영 미덥지 않았고, 지시 받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현장에서 접선된 사람들도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고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이 결국 시간을 잡아 먹고 작전계획대로 다량의 무기를 손에 넣고서 나주에서 밤을 보내야 했고, 광주 본대와도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있다가 나이든 노인이 와서 작전 중단을 전달하고 돌아 갔기에 다음 지시를 기다리면서 접수해 놓은 무기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작전대료 어제 새벽에 아시아 자동차로 가서 군용트럭 2대를 갖고 나와서 김대중 쪽 조직원들과 접선을 시도를 했는데, 약속시간 보다 더 늦게 사람들이 왔고 책임자는 없었고 나타난 사람들도 그 숫자가 적었던 것이 김대중이 갑자기 체포되고, 많은 사람들이 도피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게 발목을 잡을 줄 생각도 못하고 있었고, 군중들도 총을 줘도 피하고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는 눈치가 아닌 것이 앞으로 작전 성공이 어려워 보여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차에 작전중지 지시 명령이 떨어졌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을 보니 광주쪽 형편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